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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잘먹지?

사람을 닮아 슬픈 뿌리..인삼...그 첫번째

by 멋쟁이 지요 2012. 6. 1.

이번주에 함께 이야기를 나눠볼 주제는 인삼입니다. 

 

인삼은 가까우면서도 먼~그런 식재료입니다.

 

이 아이를 식재료라 불러야할지..약재라 불러야할지....헷갈리는군요.

 

옛날에야 귀하고 비싸서 약재로만 쓰였지만, 요새는 가격도 많이 내려가고 인삼을 이용한 음식개발도

 

많이 되서 식재료라 불려도 무방할것 같습니다.

 

당장 마트만 가봐도 삼계탕용 삼이 여러 약재와 함께 예쁘게 포장되어 판매되고 있으니 말입니다.

 

지난해에는 신랑과 경동시장에 가서 인삼을 조금 사와서 인삼주를 담궜습니다.

 

올해 뜯어서 마셔봤는데...향이며, 맛이며, 삼계탕에서 한잔씩 주는 인삼주와는 차원이 다르게 향과 맛이 깊더군요.

 

올해도 인삼주를 담그고 싶은 욕구를 강렬히 느끼며, 기왕이면 인삼에 대해 잘 알고나서 인삼주나 인삼을 이용한 요리에 도전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우선 오늘은....인삼이 무엇인가....인삼의 의미부터 알아보겠습니다.

 

 

◆인삼의 정의 및 유래

 

 

 

  깊은 산의 숲속에서 자라며 약용식물로 재배.

  뿌리는 약용하며 그 형태가 사람 형상이므로 인삼이라 함.
  인삼은 예로부터 불로·장생·익기(益氣)·경신(輕身)의 명약으로 일컬어지며,  
  한국에서 재배되는 인삼의 뿌리는 비대근(肥大根)으로 원뿌리와 2∼5개의 지근(支根)으로 되어 있고 미황백색

  지근의 수는 토질·이식방법·비료·수분 등에 의해서 차이가 있으나 분지성이 강한 식물이며

  그 뿌리의 형태는 나이에 따라 차이가 있고 수확은 4∼6년근 때에 한다.

 

  인삼은 뿌리 모양이 사람과 같아 붙여진 이름이며 귀신 같은 효험이 있다고 하여 신초(神草)로 불리기도 하고

  높은 계급에 해당되어 사람이 받든다는 의미로 인함(人銜)이라고도 하며 해를 등지고 음지를 향해 있으므로

  귀개(鬼蓋)라고도 함. 

  어떤 이가 집 뒤에서 매일 밤 사람이 부르는 소리가 들려 이곳을 파보니 사람 모양의 약초가 있었으며 이를

  캐고 나니 더 이상 부르는 소리가 나지 않았다고 하여 토정(土精)이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함.

  전해오는 이야기로 두 형제가 산속으로 사냥을 갔다 눈이 많이 와서 동굴로 피하게 되었는데 우연히 동굴

  주변에 사람 모양과 비슷한 뿌리가 많은 것을 발견하고 이를 캐내어 먹어보았더니 단맛이 났으며 이를 먹으니

  피곤하지 않고 기운이 생겨 거뜬히 겨울을 나게 되었다. 눈이 녹아 마을로 내려가서 마을사람들에게 이 약초의

  생김새를 전했는데 사람의 몸과 비슷하다 하여 인삼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문헌기록 속의 인삼

  고려인삼은 유사 이전부터 사용됐지만, 문헌에는 불과 1,500여년 전에야 나타나며 그나마도 중국문헌에

  실려 있을 뿐이다.

  <중국문헌기록>

  (1)≪신농본초경집주 神農本草經集注≫ 및 ≪명의별록 名醫別錄≫: 양(梁)나라의 도홍경(陶弘景) 저술

                                      백제·고려·상당(上黨)의 인삼에 관한 기록이 있음.
                                      고려인삼보다도 중국의 상당삼(上黨參)이 더 좋다고 하였으나

                                      상당삼은 오늘날의 고증에 의하면 만삼(蔓參)이며 인삼이 아니라고 함.

  (2)≪양서 梁書≫:  무제시대(武帝時代)에 고구려 및 백제가 자주 인삼을 조공하였다는 기록됨.

  (3)≪한원 翰苑≫ : <고려기 高麗記 마다산(馬多山:蓋馬大山인 것으로 추측)에 인삼이 많이 산출된다 기록

  (4)≪국정백록 國定百錄≫: 진(陳)의 사문(沙門) 관정(灌頂)이 편찬

                           고려에서 미역[昆布]과 인삼을 보내왔다는 기록.

  (5)≪선화봉사고려도경 宣和奉使高麗圖經≫:1123년(인종 1)에 중국의 송나라 사람 서긍(徐兢)이 저술

                                           당시에 이미 홍삼(紅蔘)이 있었다고 기록.

                                           백삼(白蔘)이 좋으나 여름을 지내면 좀이 먹기 때문에 솥에 쪄야

                                           보존성이 있다는 것.

                                           개성삼(開城蔘)은 대략 백삼·홍삼의 두 가지로 나뉘는데,
                                           백삼은 흙에서 캔 삼을 그대로 말린 것이며,

                                           홍삼은 그것을 가마에 넣고 쪄서 붉은 빛이 나게 한 것.

  <우리나라 문헌기록>

           ≪삼국사기≫ 또는 ≪향약구급방 鄕藥救急方≫에 올라 있는 인삼기록이 가장 오래 된 것.
  (1)≪삼국사기≫ 신라 성덕왕·소성왕·경문왕조에 보면 당나라에 사신을 파견할 때 공헌(貢獻)한 기록이

                  나오는데, 특히 799년(소성왕 1) 7월에는 "길이가 9척이나 되는 인삼을 발견하여 하도

                  신기하여서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어 진상을 하였더니 덕종이 보고 인삼이 아니라며 받지

                  않았다.”라는 기록이 있음.

  (2)≪해약본초 海藥本草≫: 신라에서 당나라에 조공한 인삼을 붉은 실로 묶어 포장하였다는 대목이 있어,

                            그때에도 외국에 보내는 인삼의 상품가치를 높이기 위한 가공기술이 있었음을

                            엿볼 수 있다.

  (4)≪향약구급방≫: 정확한 간행연대는 분명하지 않지만, 우리 나라에서 간행된 가장 오래된 의학서적으로

                     현존. <방중향약목 方中鄕藥目>에  인삼이 170여 종의 향약(우리 나라에서 나는 약재를

                     중국 약재에 대하여 이르는 말)의 하나로 올라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인삼을 매체로 한 국제관계

  (1) 동 양

     약 2,000년 전부터 우리 나라가 인삼의 주산국으로 알려짐으로써 인접 국가들과 정치적 및 경제적으로 인삼을 둘러싼 관계가 성립되어 왔으며, 따라서 고려인삼을 매체로 하여 정치적 및 경제적 국제관계가 촉진되어 왔다. 국내에 있어서는 인삼의 공과부담(貢課負擔), 채굴 및 제조 또는 수출교역 등의 통제에 수반되는 각종 부정으로 말미암아 인삼 때문에 생긴 삼폐와 악정(惡政)의 역사가 많았다.

국제관계는 이미 삼국시대부터 우리 나라가 산삼향(産蔘鄕)으로 알려져 중국대륙의 여러 나라 또는 일본에 공헌품 및 예단물(禮單物)로 큰 구실을 해왔고, 근세에 와서는 만주와의 국경지대에서 상호 월범채삼(越犯採蔘)으로 외교적인 분쟁이 야기된 사실(史實)이 많다.

인삼은 예로부터 국가경제에 영향을 주었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홍삼의 판매제도는 국가 전매로 되어 있다. 최근 인삼의 과학화 연구가 세계적으로 활발하게 진행되어 인삼의 탁월한 약효가 과학적으로 인정됨에 따라 인삼에 대한 국제적인 관심이 높아져 가고 있다. 이런 때에 있어서 고려인삼의 종주국으로서의 전통을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우리 학자에 의한 연구는 물론이고, 생산 및 교역을 진흥시키는 여러 가지 방도가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

최남선(崔南善)의 ≪조선상식문답 朝鮮常識問答≫의 인삼 해설에 의하면 옛날 우리 나라는 어디에나 자연생의 삼이 많아서 1년에 수만 근을 채취하여 그것을 주고 일본에서 은(銀)과 동(銅)을 사다가 그대로 중국에 팔아 이익을 얻었다. 또 인삼을 주고 중국에서 생사와 주단을 사다가 그대로 일본에 팔아 또 이익을 얻는 국제무역을 행하여 수백 년 동안의 국제수지는 거의 인삼이 지탱하여 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런데 남채(濫採)·남용(濫用)의 결과 영조 때에는 자연삼이 부족해져서 전라도와 경상도지방에서부터 씨를 뿌려 인공으로 기르는 법이 행하여지고, 나중에 개성에서 이를 시험하여 가장 좋은 성적을 내었으므로 그때부터 개성이 인삼의 대표적 산지로 되었다는 것이다.

  

  (2) 서 양

      우리 나라와 중국에서는 수천 년 동안 인삼이 영약(靈藥)으로 숭상되어 왔으나 서양에 소개된 것은 불과 수세기에 지나지 않는다. 원나라 때 중국을 여행한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이나 오도리크(Odoric,P.da)의 견문기에는 아직 인삼에 대한 기록이 나타나지 않는다.

차세(Chasse,E.U.)에 의하면 1610년에 최초로 인삼이 네덜란드 사람에 의하여 유럽에 소개되었다고 한다. 1653년 난선(難船)으로 제주도에 표류하여 1666년까지 우리 나라에 체재한 네덜란드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인 하멜(Hamel,H.)이 저술한 ≪하멜표류기≫ 가운데 조선특산품으로서 인삼이 기록되어 있다. 또 그들이 우리 나라를 떠나 1667년 일본의 나가사키(長崎)에 들렀을 때, 그곳 관헌과 회견하며 인삼에 관한 문답을 한 것이 기록에 남아 있다.

일본 관헌이 “인삼을 어떻게 발견하며 무엇에 사용하며, 또 어디에 수출하는가?”라는 질문에 네덜란드 사람은 “인삼은 북부지방에서 발견되며, 그들에 의하여 약으로 사용되고, 또 매일 타타르(韃靼:지금의 중국 동북지구, 즉 만주이며 고구려시대에는 우리의 판도였다)에 공물로 보내며 상인에 의하여 중국과 일본에 수출된다.”고 대답하고 있다.

그러나 인삼의 생태 및 약효를 스스로 관찰하여 상세하게 보관한 기록은 예수회의 선교사로 중국에 파견되었다가 중국 황제의 명으로 타타르지방의 지도 작성에 종사하던 프랑스인 자르투(Jartoux,P.)가 1711년 4월 12일자로 본국에 보낸 서신에 적혀 있다. 이 보고가 계기가 되어 캐나다의 몬트리올을 중심으로 북미 동부지역에 인삼 호경기를 불러일으켜, 채취한 인삼을 중국에 수출하여 막대한 수입을 획득하기 시작하였다.

그리피스(Griffis,W.E.)의 ≪Corea, The Hermit Nation≫(1907)에 의하면, 1750년대에는 벌써 북경(北京)이나 광둥(廣東)에서 미국이 인삼을 둘러싸고 조선과 무역상의 경쟁국이 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와 같은 인연으로 미국이 조선과의 통상을 서두르게 되었고, 드디어 1882년 5월 22일 조미수호통상조약을 조인하기에 이르렀다.

전문 14관(款)인 이 조약의 제8관에 미국인이라 하더라도 홍삼을 해외로 가지고 나갈 경우 처벌한다는 문구가 있는 것을 보더라도 한미간에 인삼이 중요한 문제였음을 알 수 있다.

그 이듬해 민영익(閔泳翊)을 전권대신으로 하는 11명의 특사단이 미국을 방문하였을 때 그리피스가 뉴욕에서 그들을 만났는데, “특제 인삼의 커다란 보따리를 내어 놓았다. 이 조용한 아침의 나라의 사람들로서, 인삼을 가지지 않고 외국에 나간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한미 두 나라의 국교 개시에 있어서 인삼이 중요한 매체 구실을 한 것이다.

 

◆홍삼이란?

홍삼의 원료로 쓰이는 것은 6년근이 주로 사용되었다.
6년근의 동체는 길이 7∼10cm, 지름 2.5cm 내외이고 뿌리 길이는 34cm, 무게 80g 정도이며,
6년근 이외 4, 5년근으로도 홍삼을 제조하고 있다.

 

◆인삼의 종류

  우리나라에서는 백삼(白蔘:생 것), 홍삼(紅蔘:찐 것), 미삼(尾蔘:가는 뿌리)으로 구분하여 기록했으나
  민간에서는 야생삼도 장뇌와 산삼으로 구별한다. 
 

  

◆고려삼 VS 외국삼

  인삼의 식물학적 특성의 하나는 재배지에 대한 선택성이 강하여 기후나 토질 등의 자연환경이 적당하지 않은

  곳에서는 적응시켜서 생육시키는 것이 아주 곤란하다는 점이다. 설령 생육된다 하더라도 생산된 인삼의 형태

  품질·약효에 현저한 차이가 있다. 현재 일본이나 미국 등지에서도 인삼이 재배되나 우리의 인삼을 따를 수

  , 이런 점에서도 우리 나라가 인삼 생산의 최적지라고 인정되어 인삼 종주국으로서의 전통을 지키고 있다.

  인삼으로 불리는 다른 나라의 약초와 구별하기 위하여 우리 나라의 인삼을 고려인삼이라 하고 ‘蔘’으로 쓰며

  외국삼은 ‘參’으로 쓴다. 따라서, 화기삼(花旗參)·동양삼(東洋參)·관동삼(關東參) 등은 외국삼을 일컫는

  말. 수천년 동안 신약영초(新藥靈草)로 계승되어 내려온 우리 나라 인삼을 고려인삼, 일본에서는'조선인삼'

  서양에서는 ‘Korean ginseng’이라 부르는데, 모두 ‘고려'‘조선’‘Korea' 등을 인삼에 붙이고 있다.

  미국인삼은 광동인삼·화기삼·아메리카인삼·서양인삼·양삼(洋參)·포삼(泡參) 등으로 불리며, 일본의

  죽절인삼(竹節人參)과, 중국의 삼칠인삼(三七人參)은 우리 나라의 인삼과는 원식물이 다르다.

  요즈음 구미(歐美)에서 시베리아인삼(Siberian ginseng)이라고 하여 판매되고 있는 제품은 두릅나무과이지만

  속(屬)이 인삼속(Panax)이 아닌 오갈피나무의 일종으로 목본식물(木本植物)의 뿌리인 것이다. 

 

 

◆인삼 재배지역

  우리 나라의 현재의 인삼재배 분포는 남한에 있어서는 주로 경기도와 충청남도에 집중분포

  경상남도 전라남도 및 제주도를 제외한 각 도에 분포되어 있다. 각 도별 산지는 경기도 강화·김포·포천·

  이천·연천·파주·고양·여주·부천·용인·광주·화성, 충청남도의 금산·부여·논산·청양·홍성·대덕·

  공주·서산, 충청북도의 괴산·청원·음성·진천·보은·중원·제천·단양, 전라북도의 진안·완주·무주 등.

  우리 나라는 자연적 천혜조건으로 어디에서나 인삼재배가 가능하나, 정부에서 특히 홍삼원료포에 대해서는

  특별경작구역을 지정하여 지정경작구역 내에 한하여 계획생산을 하고 있으므로, 자연입지에 대한 분포가 제한

 

 

생각보다 인삼..어려운 아이군요.

 

실생활에 도움이 될까 하면서 한 포스팅이었습니다.

 

음...초중고 숙제에는 도움이 될듯하군요^^;;;;;

 

다음 시간에는 인삼의 효능 먹는 방법등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자료를 가지고 찾아뵙겠습니다.

 



<자료출처> 네이버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과학 > 의약학>인삼
<자료출처> 인삼 [人蔘, ginseng ] | 네이버 백과사전
<자료출처> 인삼 [人蔘 ] | 네이버 백과사전

<사진출처>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042edu&logNo=110105809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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